사도행전 19:23~41
그 무렵 그 돈 때문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은으로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만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세공인이 있었는데, 그의 일꾼들은 상당한 수입을 얻었다. 그가 일꾼들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다 불러 모으고 말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우리가 그래도 잘 사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는 이 일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바울이라는 사람이 에베소만이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역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설득하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떳떳한 우리 사업에 불명예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위대한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을 무시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르테미스는 위엄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아시아 전체가, 아니 온 세상이 그 여신을 숭배하지 않습니까!"

  일이 벌어졌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 일은 돈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봤었던 내용이 기억날 것입니다. 바울의 선언한 복음과 그 복음이 가져온 하나님의 능력이 에베소 지역의 무수한 마술사들의 허위를 폭로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30억 상당의 마술 서적을 불태웠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을 때, 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류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장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이 새로운 조류를 막아서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거니시던 예루살렘에도 있었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에베소에도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인해 에베소에서 마술이 더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 모습을 목격한 더메드리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은으로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여러개의 젖가슴을 달고 있는 풍요로움의 상징인 이 아르테미스 여신은 에베소의 수호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이 아르테미스 신앙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바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아르테미스는 그저 사람이 만든 우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 동안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만들어 부를 축적하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메드리오는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한 것이고, 더메드리오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제 노조를 결성하여 단체 행동을 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외쳤다.
  "에베소의 아데미는 위대하다! 에베소의 아데미는 위대하다!"
  온 도시가 소동에 휩싸였고, 모든 사람이 서둘러 극장으로 몰려들어서 바울의 동행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끌고 갔다. 바울은 들어가서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추종자들이 못하게 했다. 바울에게 호의적이었던 그 지방의 치안관 몇 사람도 극장 안에 들어가는 위험을 무릅쓰지 말라고 충고하는 전갈을 보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외쳤다. 사실 그 집회 전체가 완전히 혼란에 빠졌고, 대다수 사람들은 애초에 자신이 왜 그곳에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었고, 무리 중 몇 사람이 그에게 자초지종을 알렸다. 그는 조용히 해 달라고 손짓을 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함께 약 두 시간 동안 외쳤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는 위대하다!"

  은 세공업자들로부터 시작된 이 미움과 분노는 도시 전체를 집어 삼켰습니다. 이상하게도 나쁜 건 전염이 잘만 됩니다. 아, 이상하다는 말은 취소합니다. 사람의 좋지 않은 것에 잘 달라붙는 경향을 가리켜 타락이라 부릅니다. 악은 사람을 숙주로 삼아 자신의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이 곳 에베소에서 말입니다. 아르테미스는 에베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것이 정작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르테미스는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정작 바울은 찾지 못했고, 바울과 함께 다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꿩대신 닭이라고 에베소의 야외 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에베소의 야외 극장에는 약 2만 5천명 정도를 수용한다고 하니, 2만 5천명에게 둘러싼 이 두 사람의 공포를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만 5천명의 성난 군중 소리치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는 위대하다!" 귀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는 이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당장 야외 극장으로 달려가, 이 2만 5천명에게 연설을 하고자 합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러한 폭동이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2만 5천명에게 한 번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울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친구들이 말립니다.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바울은 가난한 사람들만 사귀지 않았습니다. 에베소 지역의 공무원들 중에도 친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울의 성격을 뻔히 아는 그들은 바울에게 절대 극장으로 들어가선 안된다고 급히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소요가 더욱더 가열차지는 가운데, 누가는 그것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외쳤다. 사실 그 집회 전체가 완전히 혼란에 빠졌고, 대다수 사람들은 애초에 자신이 왜 그곳에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 사람들은 애시당초 목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일행에 대한 원망과 살의로 가득차 있었다기 보다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분전환으로 이 군중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뭔 일 났데?" 하면서 군중에 끼어서, "에베소의 아르테미스는 위대하다!"는 구호에 자신의 목소리를 그저 뜻없이 더했을 것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군중심리'입니다.


  이 와중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똑똑하고 재리에 밝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는 폐쇄성을 고집하는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에게나 미움을 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디로 튈줄 모르는 군중들이 혹여나 미운털이 박혀있는 자신들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라는 유대인을 내세워 자신들의 무고함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유대인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사람들은 무언가 이유나, 논리나, 뜻을 알고 싶어서 모인게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기분전환 중입니다. 이렇게 외치면서 말입니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는 위대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그 시의 서기관이 무리를 조용히 시키고 말했다. "에베소 사람들이여, 우리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르테미스의 고향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그 신상이 있는 영예로운 곳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진정하고 무모한 일을 삼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여기에 데려왔는데, 그들은 신전에서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고 우리 여신을 모독하지도 않았습니다.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료들이 누구를 고소할 일이 있으면, 법정은 열려 있고 치안관들도 있으니, 그들이 서로 소송을 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이상을 알고자 한다면, 공인된 집회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오늘 이 폭동 때문에 우리 자신도 법적 절차를 거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소동을 충분히 설명할 만한 어떠한 이유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렇게 말하고 집회를 해산시켰다.

  서기관이 등장합니다. 그는 고린도 법정의 갈리오처럼, 바울을 돕는 연설을 합니다. 바울과 어떠한 관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의 연설 내용은 이러합니다. 일단 아르테미스를 치켜세워줍니다. 본문에 "하늘에서 내려온 그 신상" 이라는 말은, 아마도 최초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르테미스를 치켜세워준 서기관은 바울을 옹호합니다. 그가 도둑질을 하거나 아르테미스를 직접적으로 모독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절차를 말합니다. 로마의 절차란 총독에게 이 일을 알려서 재판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같은 절차를 거쳐 예수를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총독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이 바로 폭동입니다. 신인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는 조용해야 합니다. 폭동이 일어났을 때 가장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사람이 총독입니다. 그래서 총독은 어떻게든 민중들의 폭동만큼은 막아보려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가 무죄임을 알면서도 군중들의 결정에 참견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명분도 없는 폭동을 일으켜 총독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더 나아가 로마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돌아오는 것은 십자가형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정신을 차리고서 뜻없이 모였던 그 자리에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의 사람들이 아르테미스에 열광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날의 아르테미스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 앞에서 어떤 태도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밤입니다. 아리송한 질문들 속에 분명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람은 잘못된 정체성이라도 그것을 붙잡고 고집부릴 수 있고, 심지어 그 고집은 집단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정체성은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 앞에서 바울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서, 그의 정체성을 더욱 알고 싶어 집니다. 닮고 싶어 집니다.

'[경전씹기 질겅질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전서 1:1~9  (0) 2015.09.13
사도행전 20:1~12  (0) 2015.09.11
사도행전 19:11~22  (2) 2015.09.06
사도행전 18:12~18  (1) 2015.09.02
사도행전 18:1~11  (2) 2015.08.31

WRITTEN BY
파다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