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12

대소동이 가라앉자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오게 했다. 그는 그들을 격려하고 작별 인사를 한 후에 마케도니아로 가려고 나섰다. 그는 그 지방을 지나면서 많은 말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리스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석 달을 머물렀다. 그는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가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이 음모를 꾸며서 마케도니아를 거쳐 돌아가기로 했다.


  3년간 정들었던 에베소를 떠나,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에 오르는 긴 여정에 오릅니다.  에베소를 떠나기 전에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을 불러, 이 마술과 우상의 땅에서 복음으로 살기로 한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의 이동경로를 살펴봅시다. 지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 쪽으로 가고자 합니다. 마케도니아로 올라가는 길에는 드로아라는 도시가 있는데,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로 보낸 디도와 드로아에서 만나서 함께 움직이기로 했습니다.(고린도후서 2:12,13) 그러나 만나지 못하고 홀로 마케도니아로 떠납니다. 마케도니아는 에게해 윗쪽 지방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데살로니가와 빌립보가 그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바울은 이 공동체들에 들러 그들을 격려하고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해 아가야로 갑니다.


  이 아가야 지역에는 고린도와 아테네가 있습니다. 이 시절 쓰인 편지가 고린도후서와 로마서입니다. 이미 고린도전서는 전해졌고, 이 편지로 인해 고린도 공동체는 여러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 잡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의 마음은 가벼웠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심경을 담아 고린도에 두 번째 보냅니다. 그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 지역에서 석달을 머물고 배를 타고서 시리아로 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음모가 있어서 항로가 아닌 육로를 택합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바울이 배를 탈 것으로 예상하고, 그를 습격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다시 왔던대로 길로 돌아서 예전에 디도를 기다렸던 드로아 지방에 다시 도착합니다.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 그리고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가 이번 여행에 함께 했다. 그들은 앞서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무교절이 지난 뒤에 빌립보에서 배를 탔고 닫새 후에 드로아에서 그들을 만났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가 있습니다. 이들이 먼저 드로아에 도착해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고, 바울은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서 드로아로 마침내 들어왔습니다. 이 친구들의 명단을 보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마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 듯 합니다. 출신지역이 전혀 다른 청년들이, 메시아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유대에서 시작된 복음은 온 땅으로 퍼져나갔고, 하나님의 아들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바울의 편지대로,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신실함 하나로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인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다른 서신서들을 통해 단서들을 모아보면, 이들은 모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각자 자신의 공동체에서 헌금을 가져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인, 가난하고 위기의 연속인 '그 교회'를 돕고자 함입니다. 그 교회가 이방 교회들에게 복음을 전달해주었다면, 이제 이방 교회들은 그들을 위해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려는 것입니다. 


로마서 15:26~28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낼 구제금을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방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신령한 복을 나누어 받았으니, 육신의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일을 마치고, 그들에게 이 열매를 확실하게 전해 준 뒤에,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스페인으로 가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6:1,2

성도들을 도우려고 모으는 헌금에 대하여 말합니다. 내가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 지시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대로 하십시오.

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헌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 주 첫날에 우리는 빵을 떼기 위해 모였다. 바울은 다음 날 아침 떠날 작정이었다. 그는 그들과 토론을 했는데 한밤줄까지 계속 말했다. 우리가 모여 있던 다락방에는 등불 몇 개가 타고 있었다. 유두고라고 하는 청년이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바울이 말을 계속하자 졸음이 몹시 쏟아졌다. 그는 순간 잠에 빠져 3층 창밖으로 떨어졌는데, 사람들이 일으켜 보니 죽어 있었다.


  이 하나님의 우주 가족은 함께 예수님의 살점을 떼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복음과 공동체와 온세계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전기가 없을테니, 등불 몇 개가 어른거리는 어둑어둑한 방안에서, 음영이 짙게 드리워진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유두고라는 청년이 밤늦은 시간 길어지는 바울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밀려오는 잠에 잠깐 눈을 감았을 때, 중심을 잃고서 3층 창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일으켜 보니 죽어 있었다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이 내용은 우스개소리로 설교시간에 졸아서는 안된다고 말할 때 언급되기도 합니다만,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날이 그 주의 첫날이요, 주일은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고, 그들은 빵을 떼며 메시아 예수의 살점을 먹었을 때, 그들이 소망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부활이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 새 가족 안에서, 한 청년의 예기치 못한 죽음과 다시 살아남은 단순히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는 태도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몸을 숙여 그를 일으키면서 말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의 호흡이 그 안에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서 빵을 떼어 그들과 함께 먹고는 새벽까지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떠났다. 그들은 살아난 청년을 데려갔고 크게 위로를 받았다.


  부활의 실재.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시는 생명력. 그가 기절한 것인지 죽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리한 번역일지 모르겠지만, 바울이 이때 한 말은 "그의 호흡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입니다. 바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말을 한 것인지, 우리는 추측해볼 뿐입니다만, 여기서 "그의 호흡"이 단순히 유두고가 작게 나마 숨을 쉬고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예수의 호흡 곧 성령이 유두고 안에 있어, 그 성령의 능력으로 이 위기를 전복시킨 것인지 아니면 양 쪽 다인지 생각해봅시다. 주어진 단서에서 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찌되었든 위기는 극복되었고, 하나님의 가족이 빵을 떼고 함께 대화하는 일은 계속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까지도 말입니다. 다시 살아남의 소망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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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파다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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