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0~17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이제 나는 우리 주 메시아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해야 하고,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어야 하며, 같은 생각과 같은 지식으로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제 바울이 모든 메시아 예수의 에클레시아에 은혜와 평화를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초대 교회 공동체가 문제가 없이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었다가, 그것이 나중에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쉽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편지에서는, 이미 서로 다른 사람들이 메시아의 이름으로 하나된다는 것은 퍼즐조각이 불협화음 없이 딱 들어맞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을 붙잡고, 매순간 선택의 순간 속에서 깨어있어야 하는 일이었고,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말, 같은 생각, 같은 지식을 갖는다고 해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집단이든 그 집단은 공유하는 말과 생각과 지식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하나됨을 위해 섬기는 것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말과 생각이 하나되었으나 잘못된 지식 때문에 참된 하나를 이루지 못한 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오셨을 때,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받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지식으로 바벨의 추악한 역사가 뒤집혔습니다. 따라서 에클레시아는 성령을 말하고, 성령을 생각하며, 성령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성령은 바벨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숨결입니다. 그 성령으로 숨 쉬는 에클레시아가, 온전한 하나됨을 이 땅에 구현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글로에의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분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내게 생생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각각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메시아 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에클레시아의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지금 고린도 에클레시아는 분열하고 있습니다. 분열은 중심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중심은 하나여야 합니다. 둘 일 수 없습니다. 가운데 중(中)이 보여주듯, 위로부터 아래로 꿰뚫린 것은 하나 뿐입니다. 그런데 거짓 중심은 여럿입니다. 이 거짓 중심을 보여주는 말이 "편"이라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바울 편이라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에클레시아를 개척한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아볼로 편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이 아볼로에 대해서 사도행전 18장에서 이미 살펴보고 왔습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로부터 진정한 중심에 대해서 배운 아볼로는 고린도 에클레시아를 섬기기 위해 아가야로 떠났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그를 거짓된 중심삼는 사람들 마저 생겨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는 베드로 편이라 말합니다. 고린도 에클레시아와 베드로가 어떠한 관계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메시아 편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 사람들은 옳은 것입니까? 메시아라는 말 뒤에는 '편'을 붙일 수 없습니다. 메시아가 하나됨의 이름인데, 이 하나의 이름으로 분열을 낳는 교묘함이 '메시아 편'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습니다. 아마도 '메시아'라는 이름을 내걸고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야구경기가 생각났습니다. 편을 나누어 서로 주도권 경쟁을 하는 구도 말입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게다가 에클레시아에 속한 이들은 주도권을 가지고 싸워야 할 경쟁상대들도 아닙니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 로마 철학의 홍수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제자를 삼으며 철학 학파를 만드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말을 가지고 하는 경쟁이었고, '어디가 강한 팀인가'는 오늘날처럼 사람들의 관심거리였습니다. 고린도 에클레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을 말을 가지고 경쟁해야 하는 철학학파로 오해한듯 합니다.


  메시아께서 나뉘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렸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내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외에는, 내가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메시아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지혜의 말로 하지 않았으니, 만일 지혜의 말로 한다면 메시아의 십자가는 그 능력을 잃을 것입니다.


  이러한 분열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에클레시아의 방법은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말을 가지고 주도권을 얻으려는 철학학파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입니다. 바울은 이 십자가를 세례와 연결시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 '세례'에 대해서 바울은 설명할 것이지만, 그 전에 이미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를 '편'으로 오해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세례는 세례를 베풀어준 사람의 제자가 되어서 그들끼리의 분파를 만들라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는 십자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세례는 죽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고 사는데 '생존'과 '편나눔'은 같이 죽어버립니다. 세례받은 이에게 이것들은 추구할 바가 못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보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났던 회당장 그리스보가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리스보가 바울편인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세례는 생사(生死)가 아닌 사생(死生)을 위해 받는 것이요, 이것은 편나눔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은혜를 베푸사 진정한 하나됨을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복음으로 편을 나눈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십자가로 살아가는 에클레시아가 아니라, 그저 세상의 철학 학파중 하나로, 스포츠 팀의 하나로 전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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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다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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