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1월, 충무아트홀 까지 찾아가 봤던 뮤지컬 '그 날들'은 여러 의미로 걸작이었습니다. 기타 한 대로 배짱 있게 고백하던 故 김광석의 '변해가네'는, 무영과 정학의 웅장한 우정이 돋보이는 곡으로 편곡 되었고, 자신의 애매한 마음을 털어놓았던 '기다려줘'는, 센스 있는 넘버 배치로 내용 전개와 웃음 포인트를 단번에 잡았습니다. 매 장면마다 센스있는 편곡과 선곡이 돋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뮤지컬 '그 날들' 중 제일 인상깊던 부분은, 마지막 장면 그리고 마지막 넘버였습니다.

 

1.

 하나는 또 1등을 했습니다. 수지도 분명 바이올린을 잘 켜는데, 항상 1등은 하나 몫이었습니다. 같은반 친구들은 그것을 두고 수근덕 대곤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의 1등 비결은 딱 하나였습니다. 대통령 딸이기 때문에.

  하지만, 수지도 하나도 그런 걸로 서로 싸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경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둘은 분명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2등을 가리기 위해 켜는 바이올린 두 곡 보다, 둘이 같이 연습한 바이올린 2중주 한 곡이 더 낫다는 것을.

 수지의 아빠 정학 또한 그런 우정이 있었습니다. 그와 청와대 경호원 동기인 무영은, 이상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분명 산에 올라갈 때는 남자의 발자국과 여자의 발자국이 있었는데, 내려올 때는 남자의 발자국 뿐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무영이 본래 간첩이었는데 중국 통역원인 여자를 꼬셔놓고, 간첩으로서 필요한 정보가 없으니 죽였다고 말들 했습니다. 차정학은 이상한 죽음에 대하여 오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알던 무영을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생각할 도리가 없어 그냥 추억으로 묻어둘 뿐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 대통령 딸인 고하나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행적을 뒤쫓다 보니, 자꾸 강무영의 예전 행적과 겹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를 결국 발견했을 때,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신발을 빌려주고 내려가게 한 다음, 혼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2.

 이 모든 갈등이 해소된 다음, 마지막 장면에서 불려지는 넘버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입니다. 경쟁이 아닌 바이올린 2중주를 원하던 두 소녀, 하나와 수지를 시작으로 이미 극 중에서 亡者가 된 무영을 제외한 전 캐스트가 나와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라는 곡을 합창합니다. 그리고 이 넘버의 중간 간주 때, 무영이 무대로 나와서 모두를 흐뭇하게 보고 간 뒤, key up 이 되어 더 애절한 느낌으로 노래가 다시 이어집니다.

 무영은, '지금 세대에서 잊혀져 가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순수한 그것'으로 보였습니다. 한 여자를 사랑해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누명까지 쓰게 되는, '사랑'이라고 줄일 수 있는 그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전체 캐스트들은,  마치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3.

 요즘 같은 시대에, 한 공동체가 모두 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더더욱이, 그 한 마음이 지금 세대에서 제일 뒷 순위로 밀려난 '사랑'이라면, 그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팍팍한 세상 속에서도 결국 모두의 궁극적인 이상으로 취급되는 것이 그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故 김광석씨의 노래에 대한 그리움과 합쳐서 만들어진 뮤지컬이, '그 날들'인 것 같습니다.

 

 

4. 처음이기에 할 수 있는 말

 어느 추리 소설에서, 범인이 벽에 쓴 범인의 글씨로 그의 키를 알아낸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키에 맞게 글씨를 쓰다보니, 글씨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키를 추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뮤지컬을 포함한 모든 창작물 또한 그렇습니다. 하다못해 아주 허상적인 공상과학 소설도 결국은 우리네 삶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물입니다. 그러다보니, 작품에는 '우리'가 보이곤 합니다.

 저는 뮤지컬을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모르는 것이 많고, 좋아한다고 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대신에, 뮤지컬을 통해 '너, 나, 우리'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기억하여 삶에서 실천하고자, 흔적을 남깁니다. 이 글이 언제 어디서 당신에게 읽혀질지 모르지만, 불쾌감만은 안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WRITTEN BY
파다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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